요일4: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노니"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사랑 안에 거하시느라.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수없이 듣고 배웠습니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인간사이의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성경전체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구약에서는 대표적으로 신7:8 에서 원어 ‘아하브’를 사용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인간적이고, 친구간이나,의에 대한 사랑을 포함 합니다.
렘31:3에서는 원어 오람,하쎄드라는 표현을 사용 영원한 사랑과 친절한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성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에로스,친구간의 우정을 필리아,가족 혈족(모성,부성애),지연에대한 사랑을 스토르게,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신7:8; 요일4:10).·그리스도의 사랑(요13:1; 15:9).·형제의 사랑(신10:9;요13:35;요일3:16; 롬12:9).·자녀에 대한 사랑(창22:2; 딛2:4).·남녀간의 사랑(에2:17; 골3:19).·친구간에 사랑(삼상18:1, 16; 잠17:17).·원수에 대한 사랑(잠25:21: 눅6:27).·세상에 대한 사랑(요3:16)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중에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가장 고상하며 고차원적이고 무조건적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기만하고 바라지 않는 자기 희생적 자기증여적 독생자까지 주신 거룩한 구별된 사랑이며 그 반대의 에로스 사랑은 매우 이기적이고 상대를 독차지하려는 그런 사랑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매우 미흡 합니다.왜냐하면 사랑에 대한 이해를 잘못 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뒤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위의 모든 것이 들어있고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로, 신부로, 자녀로 부르고 계십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가? 그동안 아가페사랑은 질투 않하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질투는 인간이나 하지 하나님은 질투하면 않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여 하나님은 질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외의 어떤 것을 섬기거나 절하거나 자신을 거스리는 자는 보복까지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나1:2).
어떤 의미에서는 구약성경 전체가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질투 이야기 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질투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 만큼 질투하고 질투하시는데 죽여버릴 만큼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분적으로 배우고 잘못 배워 그것이 다인 줄 알고 또는 간과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제한을 두고 경외감,두려움을 잊고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하나님은 질투도 않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않고 주기만하는 하나님으로 배우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투의 사랑은 인간의 에로스와 비슷한 듯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인간의 에로스는 범죄 때문에 타락하거나 일그러진 모습이 있는데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고 순진무고한 에로스입니다.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에로스 한다는 사랑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호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 사실 아가페단어는 아무게나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그냥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과 똑 같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그 안에는 에로스,우정,혈통적 피의 사랑도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우리를 연인처럼 부르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찾으면 음란한 여인처럼 취급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시기 질투가 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고 너무 다른 신을 섬기니까 그 대상 들을 죽이고 신약에서는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이 대신 인간들을 위해 죽습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도록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투가 성부하나님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마10:37). 성령하나님도 간음한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을 너희 속에 거하게 한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말이 헛된 줄 생각하느냐 라고 했습니다(약4:4).
시기는 헬라어로 제로스(질러스)라고 합니다.우리가 세상 것을 사모할 경우 우리의 성령이 근심하고 탄식하고 질투하며 우리영혼은 피폐하게 되고 앙상한 나무처럼 바짝 마르게 됩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님 모두 질투하십니다.
에로스의 질투하는 하나님은 원형 원본이고 우리에게 있는 에로스는 형상 곧 북사판에 불과합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내 벗이라하고(대하20;7;약2:23) 제자들에게는 너희를 이제부터 종이라하지않고 친구라하노니(요15:15)… 하나님은 아버지, 예수님은 형님 같은(어려운 일을 담당하고 도와주고), 성령님은 어머님(근심하고 애태우고 대신 기도함)같은,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같은, 친구의 우정같은,형제같은,질투하는 사랑의 원형이며 우리는 그 모형입니다.
우리는 어려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자라며 대부분 10대 때에는 이성과 우정의 에로스사랑을 배우며, 성장해서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는 사랑을 배우게됩니다… 이렇게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만지고 느끼고 볼수 있게 육체로 오신 분입니다.
이 사랑을 12제자들 중에 한사람이라도 이것을 깨닫기 원하셨는데 그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요한은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외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구원도, 믿음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성경의 분량만큼 사랑하십니다.
이 성경이 전부 사랑의 음성으로 들려질 때 비로서 진정한 믿음이 생긴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사도로 거듭나게 된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은 여기 있나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 이같이.. 새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 주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더라... 온통 사랑이야기로 꽉차있습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관계입니다.. 불신앙과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뢰에서 시작 되며 완성은 소망으로 나아가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으며 사랑으로 완성되고 그 사랑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끝나버리면 생명도 없는 것이고 사랑하기위해 생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려고 창조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사랑을 알지 못하면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미워해서 죄인으로 만들게하려 주신 것이 아니라 복주고 사랑하기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지 않고 얻어 맞다보니까 율법 때문에 얻어 맞은 거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즐거워하면서 사랑의 음성인줄 알고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 목적부터 사랑하려고 사랑하고 싶어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이 계속 피하고 도망하니까, 불순종하고 듣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화가나게 하니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시말해 구약성경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질투로 나타나는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으로 구약을 보지 못하면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은혜다 라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BS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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