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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성경 해석(1)
운영자 2018-03-11 추천 0 댓글 0 조회 708

엉터리 성경 해석(1)


 

이남하 목사  | 순회사역자


 

얼마 전에 만난 어떤 그리스도인에게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목사님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얘기를 하면서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깨어져야 함을 뜻한다’고 했는데 이게 맞는 해석인가요?”

 

만약 제가 20년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그 해석이 맞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복음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성경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열렸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20년 전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설교가와 성경 교사가 어째서 성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할까요?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이단에 속한 사람에게서도 이와 다를 바 없는 성경 해석을 보고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7년 전에 만났던 다른 이단 소속의 50년 경력을 지닌 지도자와의 대화에서도 이미 경험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그 이단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는데, 세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그가 성경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주장하는 말을 들으니, 소위 정통 기독교인이나 이단에 속한 사람이나 성경을 보는 눈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단들은 비약이 좀더 심하고 성경의 특정 구절들이 자기들을 지칭한다면서 황당하게 가져다 붙이는 것을 제외하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정통이나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잘못된 성경 해석 방법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Proof Texting(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성경을 왜곡해서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알레고리적 해석(풍유적 해석) 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전자는 자기가 말하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찾는데, 그 본문이 뜻하는 바를 무시하고 자기 구미에 맞게 갖다 쓰는 것이고, 후자는 성경 본문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 멋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둘 다 성경 본문이 말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물론 성경을 해석할 때 그 누구도 이것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황당한 비약을 지양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보는 눈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성경 해석에 감탄하며 “우리 목사님은 정말 성경 말씀을 잘 쪼갠다”고 감탄합니다.

 

Proof Texting의 예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이야기가 적합할 것입니다. 어째서 ‘옥합이 깨진 것’과 ‘자아가 깨지는 것’을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이야기에서 ‘옥합을 깨뜨린 것이 곧 자아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갖다붙이는 것은 성경의 저자가 의도한 것이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과는 동떨어진 해석입니다.

 

이것이 왜 엉터리 해석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4복음서에 다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 14:3-9

누가복음 7:36-50

요한복음 12:1-8

 

그중 누가복음 7:36-50의 내용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 외에는 다른 세 복음서의 내용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것을 볼 때 그 주인공이 세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자와는 다른 여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복음서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같은 사건이고 같은 주인공이라고 추정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옥합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엔 옥합이라는 말은 아예 없고 그냥 마리아가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만 되어있습니다. 옥합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나머지 세 복음서에서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엔 그냥 옥합을 가지고 왔다고만 되어 있지 옥합을 깨뜨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직 마가복음에서만 여자가 옥합을 깨뜨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옥합을 깨뜨린 것은 자아가 깨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유를 부은 것이 포인트이지 옥합을 깨뜨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저자와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26:12).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 14:8).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 12:7).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날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죽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귀엔 그 말씀이 들릴 리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다윗처럼 왕이 되어 통치하시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모두 다 한 자리 차지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런 망상에 빠져 있을 때 오직 한 여자(요한복음엔 마리아라고 소개)만이 예수님의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이 이야기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세 복음서와는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킨 누가복음에서는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6-4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역시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깨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옥합이 깨어졌음을 주목하고 갖다 쓰는 것이야말로 proof texting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자기 구미에 맞게 갖다붙이는 엉터리 해석입니다.



 

출처. 크리스찬저널

http://www.kcjlogos.org/news/articleView.html?idxno=12520

http://www.kcjlogos.org/news/articleView.html?idxno=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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